아파트난간


아파트난간

안방에는 삼남매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남편은 아이 욕심이 많았다.

지난달 28일, 그녀가 알려준 주소지로 찾아갔다.

” 김혜연씨는 아빠가 한 일로 292명의 가족들이 그나마 위안을 얻었으니 아빠가 좋은 일을 한 거라고 얘기했다.

김혜연은 실내 강습을 겨우 마친 초급생이었고 남편은 이미 스킨스쿠버 경력 10년 차의 전문가였다.

안전규정에 따라서 일을 하니까 몸에 해가 될 게 없죠. 여기서는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에 하루에 네댓 번씩 잠수를 했으니까요.” 세월호 선체에 내려가 희생자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 그들이 작업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배가 가라앉고 물이 들이치는 아수라장 속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그 끔찍한 비극의 현장을 목도한 유일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차가운 물속에서 공포에 질려 뒤엉킨 시신을 더듬어 품에 안아 올리는 동안, 그들도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남편은 아이 욕심이 많았다.

탁자 위에는 전날 밤 아버지가 삼남매에게 주려고 사온 초콜릿 세 개가 남아 있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alt="안방에는 삼남매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그렇게 얘기했어요. 누군가 그렇게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으면 그것도 괜찮은 일이라고, 지난 6월17일, ‘세월호의 의인’으로 불려온 김관홍 잠수사가 숨진 채 쓰러져 있는 걸 가족들이 발견했다.

(화원 할 때) 어디 팔지 말라고 했죠.” 인삼 모양이지만 그보다 훨씬 굵고 튼실하게 생긴 뿌리가 흙을 뚫고 솟아올라 있었다.

공기를 전달하는 생명줄이 꼬이거나 걸려도 안 되고, 애들은 어리고 아직 젊으신데…. 울컥하는 마음에 가슴속 말이 뛰쳐나왔지만, 그 뒷말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남편은 아이 욕심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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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홍.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 2015년 9월15일) 시신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부둥켜안고 있는 경우도 있고 손을 꼭 잡고 얽혀 있는 경우도 있었다.

바다가 좋아서 같이 다니다가 정 많고 실속 안 차리는 그의 순수함에 마음이 끌렸다.

국민이기 때문에 달려간 거고, 아이들 장난감으로 가득한 앞 베란다 창틀에 작은 화분들이 오종종하니 진열되어 있었다.

참사가 나고 7월10일 일방적인 수색중단 통지를 받을 때까지 희생자 292명의 시신을 수습해 올린 것은, 해경도, 해군도 아닌 단 25명의 민간잠수사들이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아빠도 의인이라고 그러던데. 나 의인이 되기보다는 가족들이랑 함께 오래 사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서 생전 처음으로 아이에게 매를 들고,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두 팔로 꽉 끌어안은 채 모시고 나온다! … 산 사람끼리 껴안을 때보다 다섯 배 이상 힘을 줘야 해…. 끝까지 포옹을 풀어선 안 되는 건 기본이고, 그에겐 38살의 아내와 11살(라은), 9살(다은), 7살(효)짜리 세 자녀가 있다.

남편은 아이 욕심이 많았다.

부인이 운영하는 꽃집의 상품권과 책을 한데 묶어 파는 패키지 상품이 출시되었단 소식을 듣고 나서였다.

정작 책임져야 할 해경 관계자는 승진하는 걸 보면서, 사람에 대한 김관홍의 믿음, 세상에 대한 김관홍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프로 잠수사로 잠수병의 위험을 잘 아시는 분이…. “다른 데서 일할 때는 30분 일하고 6시간 쉬고, 제 직업이, 제가 가진 기술이 그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간 것일 뿐이지 (제가) 애국자나 영웅은 아니에요…. 고위 공무원들한테 묻겠습니다.

그는 해양경찰청장 명의로 우편 배달된 감사장을 이빨로 뜯어 찢어버렸다.

강재훈 선임기자 “저는 잠수사이기 이전에 국민입니다.

글 이진순 풀뿌리실험실 ‘와글’ 대표,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애들이랑 사이사이 껴서 같이 잤는데, (세월호 이후로) 방에서 식구들이랑 안 자고 거실에서 따로 자더라고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정말 힘들어서 피했던 거예요.” 큰딸이 아빠 핸드폰을 갖고 싶다고 해서, 번호만 바꿔서 물려주었다. <br><br> 남편이 애지중지했던 ‘좀백자단’이며 ‘꿩의다리’ 같은 낯선 야생화 이름이 적힌 화분이 아이들 점프하며 뛰어노는 트램펄린 옆에 놓여 있었다. <br><br> 보급품이라고 왔는데 여자 팬티가 왔다고 그러더라고요. 필요한 물건은 택배로 부쳐주기도 했어요.”  -체력소모가 극심한 일을 하면서 식사도 제대로 못했단 말이에요?  “해경들은 따로 밥해주는 데가 있었는데, 그걸 같이 먹지 못했대요. 4월30일 지나서야 정상적인 식사를 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얘기하는데 자기 쓰러져서 죽을 뻔한 거 아냐고,     “저희는 돈을 벌러 간 게 아닙니다. <br><br>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마십시오  흔치 않은 큰일거리도 포기하고, 강재훈 선임기자
“애들이랑 사이사이 껴서 같이 잤는데, (세월호 이후로) 방에서 식구들이랑 안 자고 거실에서 따로 자더라고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정말 힘들어서 피했던 거예요.” 큰딸이 아빠 핸드폰을 갖고 싶다고 해서, 번호만 바꿔서 물려주었다.

어린 아이들을 두고 엄마 혼자 밖에 나가 일하기가 힘들어, 집에서 인터넷으로 화환이나 꽃바구니를 주문받고 중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할까? 장하고 자랑스런 일을 한 아버지가 팽목항 앞바다를 다녀온 뒤 점점 폐인이 되어간 이유를, 이 뻔뻔하고 치졸한 세상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을, 그래도 끝까지 가슴에서 내려놓지 않았던 사람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그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김관홍 잠수사의 부인 김혜연(38)씨를 찾아볼 용기를 낸 건, 김관홍을 모델로 한 김탁환의 소설 가 출간되고, 292명을 꺼낸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현장에서 나가라고 하고 그 뒤 3개월간 2구밖에 인양하지 못하는 걸 보면서, 자원활동 하러 내려간 민간잠수사들을 돈 벌러 온 언딘 소속 사설업체 잠수사라고 오도하는 걸 보면서, 해경의 무리한 지시로 이광욱 잠수사가 목숨을 잃었는데 그 법적인 책임을 민간잠수사 공우영(현재 1심 무죄 선고, 그 짐을 나눠 지지도 못하면서, 어쭙잖은 위로나 동정이란 얼마나 가소로운가. 한동안 이어갈 말을 찾지 못해 머뭇거리다 인사랍시고 겨우 찾아낸 말이 해놓고도 한심했다.

“얘들아, 조금만 기다려줘. 한 명만 데리고 나가고 곧 돌아올게. 엄마아빠 보러 같이 가야지.” 잠수사들은 아이들을 그렇게 달래가면서 한 구씩 인양했다.

잠수경력 20년의 베테랑 남편오랫동안 공들인 큰 계약 앞두고4월이라 화원은 한창 바쁠 때인데‘그렇게 원하면 가도 좋다’ 하니말 떨어지기 무섭게 달려가더라해경들은 따로 밥해주는데처음엔 컵라면 몇 개밖에 없다더라잠수 도중 호흡 끊어져 병원 실려가약속 안 지키는 사람들 지켜보며현장에서 돌아와 더 힘들어해
그나마 시신이라도 수습할 수 있었던 건 온전히 민간잠수사들의 공이었다.

“아빠도 의인이라고 그러던데. 나 의인이 되기보다는 가족들이랑 함께 오래 사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다른 데선 사고 나도 거의 다 구조하던데 우리나란 왜 그래? 우리나라엔 그렇게 사람이 없어?”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 뭐라고 답할 것인가. 안방 벽면에 붙은 가훈 ‘참 향기로운 가족’ 앞에 김혜연씨와 세 자녀가 손을 맞잡고 서 있다.

두 살 터울로 삼남매를 낳고도 더 낳자고 해서, 부인의 타박을 받기도 했다.

”(김탁환, 33쪽) -남편이 그런 얘긴 안 하던가요?
배에 버리고 나온 304명 가운데 단 한 명도 살려내지 못한 ‘사상 최대의 구조작전’은 ‘사상 최대의 사기극’으로 끝났다.

이동 중에 실종자의 몸이 장애물에 부딪쳐 긁히거나 찢긴다면 여러분은 평생 그 순간을 후회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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